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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 성부

카운터테너의 역사와 부활

by 제이N 2025. 8. 2.

카운터테너는 성악에서 가장 독특하면서도 오해가 많은 성부입니다. 일반적인 남성 성부인 테너나 바리톤, 베이스와 달리, 여성 소프라노나 알토 음역을 소화하는 고음 남성 성악가로 분류됩니다. 오늘날에는 바로크 오페라, 고전 종교음악, 현대 창작극까지 폭넓게 활동하며 주목받고 있지만,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클래식 무대에서 이 성부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을 정도로 긴 공백기를 지닌 성악입니다.

카운터테너는 단순히 고음을 내는 남성이 아니라, 음악사적으로 카스트라토의 자리를 잇는 존재이며, 성악의 표현 영역을 확장한 역사적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성부는 오랫동안 의문과 편견 속에 있었고, 음악적 정체성도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바로크 시대 이후 몰락한 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예술적 재조명을 받으며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카운터테너 성악의 역사적 기원부터 몰락과 재탄생에 이르는 과정을 시대별로 정리하고, 현재의 성악 교육 및 무대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더불어, 왜 이 성부가 다시 필요해졌는지, 그리고 그것이 음악사에 어떤 의의를 갖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카운터테너 역사 부활

중세와 르네상스 성악에서의 카운터테너 역할

 

카운터테너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13~14세기 중세 말기입니다. 당시의 교회 음악에서 테너는 기존 선율을 담당하는 성부였고, 그 위에 꾸밈음을 추가하거나, 옥타브 이상 높은 음을 부르는 성부가 ‘콘트라테너(Contratenor)’ 또는 ‘콘트라테노르 알투스’(Contratenor Altus)로 불리며 생겨났습니다. 이들이 바로 후대의 카운터테너에 해당합니다.

성악 구조 내에서의 기능

이 당시의 카운터테너는 오늘날과 같은 미성 중심의 음색보다는, 중성적이면서도 울림 있는 알토 음역을 다루는 고음 남성 성부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성가대에서 가성(falsetto)보다는 혼성 발성(중간 목소리)을 사용하며, 음악 내에서 장식과 선율 변형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르네상스 시대로 이어지며, 팔레스트리나(Palestrina)나 빅토리아(Victoria) 같은 작곡가들의 다성 음악에서도 중요한 성부로 기능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카운터테너는 교회 안에서 가창 능력과 음악적 해석력을 동시에 인정받는 성악가였으며, ‘가성’이라는 개념은 이 시점에서는 음색보다 역할적 명칭에 가까웠습니다.

오늘날과의 차이

오늘날의 카운터테너는 주로 가성을 활용하여 여성 성부 음역을 부르지만,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다양한 발성 방식이 혼재했고, 카스트라토와의 경계도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카운터테너는 음역보다 음악 내 역할로 정의되었으며, 고유한 표현 영역을 구축한 성악 성부로 인식되었습니다.

 

바로크 오페라의 황금기와 카스트라토의 대체자로서의 카운터테너

 

17세기부터 바로크 오페라가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남성 고음 성부의 대표 주자는 카운터테너가 아닌 카스트라토로 넘어가게 됩니다. 카스트라토는 인위적인 수술을 통해 변성기를 거치지 않게 된 남성으로, 강한 폐활량과 넓은 공명 공간을 지닌 채 소프라노 또는 알토 음역을 자유롭게 부를 수 있었기 때문에 오페라 주역으로 부상합니다.

카운터테너의 역할 축소

이 시기부터 카운터테너는 무대 주역에서 점차 밀려났으며, 교회 음악이나 왕실 성가대 내부에서의 제한적 활동에 머무르게 됩니다. 특히 헨델, 비발디, 퍼셀 같은 작곡가들은 카스트라토를 위한 아리아를 대거 작곡하였고, 이 작품들은 당시 기준으로는 카운터테너가 소화하기 어려운 고음역과 기교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카스트라토가 종교적 이유로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웨스트민스터 사원 성가대 등에서는 카운터테너 전통이 계속 유지되었습니다. 이 전통이 훗날 카운터테너 성악의 부활에 결정적인 연결 고리가 됩니다.

카스트라토 몰락 이후의 공백기

18세기 후반부터 윤리적·사회적 문제로 인해 카스트라토는 점차 사라졌고, 이후 여성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가 남성 고음 성부를 대체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카운터테너 역시 주류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며, 19세기 오페라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 성부가 됩니다.

 

20세기 이후 카운터테너의 재발견과 부활

 

카운터테너 성부의 현대적 부활은 20세기 중반, **영국의 성악가 알프레드 델러(Alfred Deller)**에 의해 시작됩니다. 그는 1940년대부터 바로크 음악의 원전 해석 운동(Early Music Revival)과 함께, 카운터테너라는 고음 남성 성부가 과거 바로크 작품을 원작에 충실하게 재현할 수 있는 성악 형식임을 입증합니다.

알프레드 델러와 ‘예술적 설득력’

델러는 가성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발성과 섬세한 감정 표현력으로, 헨델의 오라토리오와 퍼셀의 영국 음악을 중심으로 카운터테너의 정당성을 예술적으로 복원합니다. 그는 단순히 음역을 소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음악적 해석력과 무대 존재감을 통해 카운터테너의 가능성을 입증하였습니다.

이후 세대의 확장

델러 이후 제임스 보우만(James Bowman), 데이비드 대니얼스(David Daniels), 필립 자루스키(Philippe Jaroussky) 등 수많은 카운터테너가 등장하면서, 이 성부는 바로크 오페라에서 핵심 성악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최근에는 오페라뿐 아니라 현대 작곡가들이 카운터테너를 위한 작품을 직접 작곡하면서, 과거의 유산을 재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창조적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현대 성악 교육과 무대에서의 카운터테너 역할

 

현재 성악 교육에서는 카운터테너를 별도의 성부로 훈련시키는 커리큘럼이 마련되어 있으며, 전문 음대에서도 가성 기술과 혼성 발성, 고음 공명 조정 등을 중심으로 한 체계적 훈련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의 인식 변화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남자가 여자 음을 낸다’는 인식으로 비주류 취급을 받았던 카운터테너는, 이제 역사적 정당성과 발성의 전문성을 모두 갖춘 성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특히 알토 영역을 전담하는 카운터테너는 메조소프라노가 표현하기 어려운 극적 긴장감과 음색 차별성으로 무대에서 독자적 매력을 보여줍니다.

무대 활용의 확장

오늘날에는 바로크뿐 아니라 현대 오페라, 종교음악, 합창, 실내악, 심지어 대중음악까지 카운터테너가 활약할 수 있는 장르가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또한 젠더적 경계를 넘는 무대 표현에서도 카운터테너는 새로운 예술적 상징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카운터테너는 중세 성가에서 시작하여,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거치며 성악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성부입니다. 카스트라토의 대두로 한때 자취를 감췄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알프레드 델러를 필두로 부활하면서 고음 남성 성부로서의 예술적 위치를 확립하였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카운터테너는 단순한 재현 성부를 넘어, 새로운 성악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중요한 예술적 도구로 다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 본 글은『The Early Baroque Era』(Curtis Price, 1993), 『Singing in Style』(Martha Elliott, 2006)를 일부 참고하였습니다.